백두대간 34회차는 저수령에서 죽령까지였습니다.
지리산 소녀, 하우투님이 일일대장님이었습니다.
거리가 긴 무박산행이고 눈이 왔지만 베테랑 산꾼이라 염려는 안했습니다.
새벽에 닿은 고속도로 단양 휴게소는 눈이 내리고 있었는데 워낙 적은 양이라 흩날리는 꽃잎처럼 보였습니다.
초속 5cm,
어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벚꽃잎이 지는 속도라던데 딱 그 속도로 눈이 날리고 있었습니다.
속도에도 미추가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속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수령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아무 걱정이 없었다는 얘깁니다.
저수령에는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저수령이라는 이름 그대로 머리를 조아리고 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상과 달리 눈도 많았습니다.
바람은 섶을 헤쳤고 쌓인 눈은 신발 틈을 노렸습니다.
눈 덮힌 겨울산은 어두웠으나 빛났습니다.
하얀 어둠 속에서 하우투님은 신통하게 길을 읽어 나갔습니다.
어쨌든 견딜만한 추위였고 견딜만한 어둠이었으므로 사람들은 즐겁게 걸었습니다.
갑자기 눈 앞이 환해졌습니다.
흙목정상이었습니다.
백두대간 마루금 위로 아침노을이 산불처럼 타올랐습니다.
헤드랜턴 불빛에 상고대가 네온처럼 반짝였습니다.
이번 산행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은 그러나 기억으로만 남았습니다.
카메라는 배낭 안에 있었습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해가 떴고 약속된 장소에서 아침을 먹었고 푸른 하늘 아래 황홀한 눈길을 다시 걸었습니다.
묘적봉을 넘었고 도솔봉에 올랐습니다.
도솔봉에서는 사방이 조망되었습니다.
이런 경치는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닙니다.
하나의 과정을 끝내고 한단계 올라선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도솔봉에서 죽령옛길은 빤히 보였습니다.
손을 뻗으면 만져질 것 같았습니다.
도솔봉 인증샷을 찍고 편안한 마음으로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한참 내려왔는데 죽령은 아직입니다.
긴 계단까지 나타납니다
마음 같지 않은게 인생이고 그 인생 닮은게 대간길이라더니 산 넘어 또 산이었습니다.
봉우리 여러개를 넘고서야 죽령에 닿았습니다.
눈 속에 파묻혀 더 푸른 조릿대 처럼 구간이 힘들 수록 기억도 더 푸르네요.
<2011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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