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한계령 연가

숲속편지 2007. 8. 8. 11:23

벌써 입추다.

8월8일.

8자의 중국어 발음이 돈을 번다는 중국어 발음과  같아서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날이다.

 

그러나  비가 온다.

이렇게 아침부터 비가 내리면

바깥 근무가 없는 나 같은 이마저  하루 공치는 기분이 든다.

 

이런 날 듣기 좋은 노래 가운데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이 있다.

"한계령"을 듣고 있노라면  맥없이 먼 산을 바라게 된다.

 

휴가지에서 돌아올 때 고속도로 대신 일부러 비 내리는 한계령을 넘었다.

 

 

하지만 한계령은 아련한 기억 속의 그 길이 아니었다.

작년 집중호우로 주전골도 흘림골도 다 무너져 내렸고

아물지 않은 생채기는 어느 날 지나가는 사람의 마음마저 아프게했다.

 


 

상처도 자연의 일부이거늘.

장대비가 내려도  자동차가 흔들려도  곳곳이 공사중이라 가끔 정체가 되어도

한계령 넘어가는 44번 국도는 여전히 아름답다.



 

한계령의 옛 이름은 오색령이다.

한계령 휴게소 진입로에 서 있는 돌에는,

조선 영조 때의 인문지리서 "택리지"에도 백두대간의 빼어난 여섯 고개 가운데 으뜸이

오색령이라 써있다고, 뽐내고 있다.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한계령 휴게소.

아직 많은 것을 보지 못한 사람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건물 하나를 꼽으라면

부석사 무량수전과 한계령 휴게소를 놓고 고민할 만큼

나는 한계령 휴게소를 좋아한다.

 

대학로 문예회관, 샘터사 사옥, 공간 사옥 등 김수근의 건축은 다 좋다만

한계령 휴게소에는 꺼낼 수 없는  추억이 묻혀 있어 더 특별하다.



 

 

젊은 날의 추억은 작은 일도 곧잘 크게 기억된다.

내가 한계령을 처음 넘을 땐 사람에 팔려 경치도 건물도 안보였었다.

 

한참 지나  한계령을 혼자 다시 넘는데 처음 온 곳 처럼 벅찼고 새로웠다.

 


 

 

비가 안내렸다면 아주 말갛게 보였겠지.

하지만 성긴 발처럼 드리워진 빗속으로, 휘감겨 오르다 스러지다 춤추는 운무 사이로,

언듯 언듯 부끄러운  설악의 준령들을

커피 한잔 들고 바라보는 재미도 나쁘지 않았다.

 

저 산이 오지마라 오지마라해도 가을이면 다시 찾을, 고이 두고 온  설악,

한계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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