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부르다

단순하게 보다 분명하게

숲속편지 2007. 8. 6. 16:51


휴가를 다녀왔다.

며칠 사무실을 비웠다가 다시 돌아왔더니

어쩐지  2007년의 나머지를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다.

 

출근길이 복잡한 월요일인데다

여러 날 모른체 했던 일들이 궁금하여 일찍 출근했다.


이른 사무실에서 한참을 혼자 앉아있었다.

메일함을 열어 밀린 일들을 대강 훑어보았다.

기대도 걱정도 안했지만 특별한 일은 없었고

일찍 나온 보람도 없이 메일함엔 스팸만 넘쳤다. 

 

직원들이 출근할 시간까지 할 일도 없으니 새벽에 잠 깬 노인 처럼

부시시 일어나 빈 사무실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좁디 좁은 사무실은, 얼마 전에 넓고 좋은 사무실에서 이사온 곳이다.

칸이 줄어 큰 짐을  많이 처분했는데도 시계는 어쩌지 못해 벽마다 시계를 붙이고도 남아

몇개는 빈 책상에 그냥 놓여 있다.

 

빈 벽에는 복제품 그림도 몇개 걸려 있다.

마음으론 무명이어도 좋으니 진품을  걸고 싶은데 원체 비싸 꿈만 꾼다.

대신 어쩌다 미술관을 가게되면 들르는 기념품점에서 산,

표현 그대로 기념품들이다.

생각난 김에,

빈 사무실을 돌아 다니며 사진을 찍어 보았다.

 


영국의 여류화가 Elena Gomez.
우리나라의 이수동 화백이 생각나는 그림이다.

삼년 전 하나에 만원씩 다섯개를 샀던 기억이다.





Annora Spence라는 역시 영국의 여류화가.

요것두 삼년 전 개당 오만원씩에 구입했다.



 

내 방에 걸린 저 그림은 12년 전 말아먹은 식당에 있던 것.

당시 운영하던 식당에 여러개 걸렸던 것은

맥도날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토마스 맥나이트의 복제품들이었는데

이사 다니며 없어지고 누굴 주고 그래서  작고 인기 없는 고흐만 남았다.

성격이 희미해서 그걸 감추려고 그러는지

선명하고 명랑한 맥나이트를 참 좋아했었다.



 

사무실 입구에는 크림트의 "키스"가  걸려있다.

이건 재작년에 덕수궁 옆 서울시립미술관 기념품점에서 비싸게 산 사진이다.

 

여러 해에 걸쳐 사들인 저 그림들을 다시 들여다 보니 나의 단순한 성격이 보인다.

그렇군.

나는 원래 단순하고 명쾌한 것을 좋아했었군.

그런데 지금은 왜 스스로 생각의 굴을 자꾸 파고 있는 것일까.

 

남은 한해,

얼키고 설킨 매듭을 풀겠다고 끙끙대지 말고

노부나가처럼 단칼에 잘라버리자고,

단순하고 명랑하게 생각하자고,

늙은 얼굴로 주먹을 쥐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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