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부르다

도박

숲속편지 2008. 9. 5. 10:06

 

 

 

험하게 살지는 않았는데

친구 중에 도박을 좋아하는 인간이 여럿이다.

허구헌 날 카드놀이 하느라 집구석에 비가 새는지 쌀이 떨어졌는지 나 몰라라던 한 친구는,

참다 못한 마누라가 현장을 신고해 경찰에 잡혀간 적도 있다.

물려 받은 재산은 한술 두술  다 말아드시고  결국 이혼까지 당해 한 때 폐인에 이르렀다가,

지금은 친구네 오락실에서 잔심부름하며 그냥 저냥 버틴다.

 

세상은 참 여러 종의 인간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절실히 느끼게 해준 

또 다른 친구도 있다.

이 친구는 노름판에 가기 전에 

반드시 목욕을 하고 정한수 떠 놓고 절까지 여러번 한 다음에야 집을 나선단다.

둘이 소주 한잔 하다가 직접 들었는데 농담이 아니란 걸 난 안다.

단 한번도 잃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

 

친구 얘기에 의하면 노름은 체력이 반이다.

밤새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새벽녘에 승부가 갈리므로 그렇단다.

하긴 졸리다 싶으면 슬쩍 광 팔고 나가서 찬물에 세수하고 맨손체조까지 하는 비장한 놈을

무슨 수로 이길까.

 

그러나 도박의 프로가  인생의 프로는 아니니

이 친구, 돈을 따고 가정을 잃었다.

친구가 목욕재계하고 비장하게 도박장으로 향할 때

마누라는 목욕재계하고 꽃마차 캬바레로 출근한다는 풍문이 돌았으니 말이다. 

 

 

 

폴 세잔(1839~1906)이 그린 <카드놀이 하는 사람>에 나오는 인간들도 표정은 놀이가 아니다.

논다고 노름인데 흥겹지 않고 괴롭다.

까만 거 올라와라 까만거 까만거.....카드 두장을 겹쳐 천천히 쪼는 짧은 순간,  심장은 자작자작 탄다.

나락에 빠질 확률이 높으니 고통이 크고

고통이 큰 만큼  요행이 찾아온 순간의 환희가 크고 짜릿하다.

 

레이스 감고 감아 잔뜩 커진 판에서 어찌어찌 한끗 차이로 상대를 누르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뉘라서 아니 들까.

그 순간의 희열은 섹스보다 낫다고 한다.

죽다 살았으니 오죽하겠나.

 

 

 

그러나 놀이를 놀이로만 내버려둘 세상이 아니다.

머리와 운을 겨루는 대신 상황을 조작하려는 시도는 비단 도박판에만 있지 않다.

도박판은 보다 직접적일 뿐이다.

술과 여자는 흔한 무대장치다.

대놓고 속임수가 동원되기도 한다.

 

조르주 드 라투르(1593~ 1652)는 이런 건 단지 풍습이라는 듯 <사기 도박꾼>을 그렸다.

등에 감춘 에이스 카드를  꺼내는 사기꾼,

술을 따르는 척  신호를 보내는 하녀,

예리하게 눈치를 살피는 귀부인과

오직 자기 패만 들입다 연구하는 꺼벙한 귀족의  순진한 얼굴이

마치 이 세상, 어느 하루를 보는 것 같다.

어느 구름에 비가 숨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내 길만 가는데도 도처가 함정이고 덫이다.

 

인생은 한방이라지만

행운은 결코 그냥 오는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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