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경계하다 (백두대간 17회차 후기)
지난 해 초여름,
능선 저쪽의 운무가 이쪽으로 넘어오지 못하는 지리산에서 백두대간의 첫발을 떼었습니다.
백두대간은 우리 땅의 가장 굵은 산줄기입니다.
길의 오른쪽은 경상도였고 왼편은 전라도였습니다.
지리산 자락 백두대간에 떨어진 빗방울이 오른쪽으로 구르면 낙동강으로 섞이고 왼편으로 기울면 섬진강에 이릅니다.
참나무 숲과 소나무숲, 마을과 마을, 백제와 신라, 전라도와 경상도의 사잇길,
백두대간은 어느편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이쪽과 저쪽의 경계로 뻗어나간 능선입니다.
여럿이 함께 걸었습니다.
더 이상 어리지 않지만 아직 늙지 않은,
세대와 세대의 경계인들이 동행이었습니다.
비를 맞았고 바람을 헤쳤습니다.
계절과 계절의 경계에서 똑바로 걸었습니다.
정상이란 단지 오르막과 내리막의 경계, 그러므로 잠시 머물 뿐.
그래도 거기 서야 이쪽과 저쪽이 고스란히 보입니다.
산이든 산 아래든, 어느 분야에서든 한번은 정상의 바람을 호흡해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경계를 따라 걷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자에서 보듯, 山은 높이 솟은 하나의 봉우리가 아닙니다.
지리산과 덕유산을 지나는 동안 이름없는 백개의 봉우리도 같이 오르고 내렸습니다.
사는게 그렇듯 굴곡은 대간길의 친구입니다.
놀라지 마세요.
계절은 불현듯 옵니다.
갑자기 왔다가 갑자기 가버려 더 아름답습니다.
가을은 여름과 겨울 사이에 피는 꽃.
백두대간을 걸으며 쓸쓸하고 아름다운 계절의 경계를 알았습니다.
매 구간의 날머리는 다음 구간의 들머리입니다.
내리막의 끝은 오르막의 시작입니다.
절망의 에필로그는 희망의 프롤로그입니다.
계절을 바꿔가며 백두대간을 걷는 동안 많은 이들을 보고 만나고 이야기 합니다.
가장 많이 보고 만나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자신입니다.
나는 지금 누구와 어디를 걷고 있는지, 돌아보면 이 곳은 아슬아슬한 경계.
산과 산의 경계, 사람과 사람의 경계로 길은 이어집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진은 다음 구간의 시발점이며
지난 3월 13일, 열일곱번째 대간길을 마친 곳. 경상도 상주땅 개머리재입니다.
이곳은 경계가 아닙니다.
지금 대간은 충청도와 경상도의 경계가 아니고 경상도 상주를 관통합니다.
지금 대간은 산과 산의 경계가 아니고 사과밭을 관통합니다.
지금 우리는 이쪽과 저쪽의 경계가 아니고 이쪽과 저쪽의 한가운데를 걷고 있습니다.
열일곱번째 대간을 마치고 지나온 백두대간을 돌아 봅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이쪽과 저쪽을 그냥 하나로 보면 경계가 곧 한가운데.
어리지도 늙지도 않은 세대의 경계가 아니라
내 인생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땅의 한가운데를 걸으며 경계를 경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