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다 가버린 소리.....⑮
87년경, 제대 무렵, 내무반에서 즐겨 보던 프로그램이 두개 있었다.
하나는 "꽃바람 부는대로 흐르는 세상 뭐 신나는게 없을까~
가는대로 버려두긴 아까운 날들~멋지게 살아보"자며 청년 이정석이 노래하던
"퀴즈 아카데미"였고 또 하나는 얼마전 리메이크하여 방영된 "사랑과 야망"이었다.
80년대 초 국내 방영된 미국 미니시리즈 "야망의 계절"을 각색하여
이덕화, 김청,차화연 등이 열연한 "사랑과 야망"도 재미있었지만
원작인 "야망의 계절"은 정말 흥미진진했었다.
배우들 이름은 잊었고 극중 이름인 "죠다쉬"형제의 갈등만 어렴풋 생각난다.
더불어 당시 반도패션에서 팔던 "죠다쉬"청바지를 사입었던 기억도..-.-;;
"사랑과 야망"이 "야망의 계절"에 치여 가물가물한데 비해
피곤한 병영생활 가운데 모처럼 느긋한 일요일 저녁,
내무반 침상에 모여 앉아 시청하던 "퀴즈 아카데미"는
연출자(주철환)나 진행자(이창섭)는 물론이고
"여름사냥","자하연","얄리얄리","달과 600냥","용마", "아크로폴리스"같은
명문대 출연자까지(이걸 쓰면서 슬슬 떠올려보니 어이없게도 얼굴까지) 생생히 기억난다.
"노찾사"의 "사계","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도
이 특별한 프로그램을 21C로 불러내는 피리소리다.
요즘은 개콘에서 "빡빡이 윤성호"와 "이수근"이 멕시칸 복장으로 나와
한바탕 노래하는 "야야야야야~아야야호~" 가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의 대표주잔데
군에 있을 땐 몸 편한 일요일 지나가는 것이 너무 아쉬워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가 명랑하게 들리질 않았었다.
그 노래,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에 이런 구절이 있다.
"..............
변함 없이 들리는 소리
이제는 다 가버린 소리
들리던 소리도 들리지 않네.........."
쓰다보니 처음부터 자꾸 곁가지를 쳤는데
사실 "이제는 다 가버린 소리"를 떠올리고 거기서 다시 "퀴즈 아카데미"를 회상한 까닭은
조금전 발견한 요 아래 사진 때문이다.
<사진 출처 : 동호회 카페 >
이 사진을 보는데 지나간 시절, 살아가는 소리들이 한꺼번에 들려왔다.
"똥 프어~~"
달포거리로 골목마다 들려오던 소리.
차가 못들어 오는 좁은 골목골목, 똥지게는 난창난창 아슬아슬 똥을 퍼날랐고,
골목 어귀까지 질질 흘려놓아 그 냄새는 지금 생각해도 으웩......-.-;;
"징~~징~~~ 뚫어~~~"
어께에 굵은 철사를 타래 감아 둘러메고 징을 치며 지나가던 굴뚝 청소 아저씨도 있었다.
"고장난 시계나 머리카락 팔아요~~~~"
덜그럭 덜그럭 솜틀집 앞을 지나가는 고물상 아저씨는
고장난 시계나 머리카락 말고도 별 것을 다 수거해 갔는데
"고추 씨"도 가져가고 몇번이고 고아 먹어 푸석해진 "소뼈"도 사갔다.
"짤그렁 짤그렁~"
두부장수 아저씨 두부가 왔다고 짤짤짤~ 애들이 부르던 노래가사 그대로다.
"으아아앙~~"
휴대전화는 커녕 금성사 다이얼 전화조차 귀하던 시절,
이맘 때 창경원은 난리난리 그런 난리가 없었다.
밤 벚꽃놀이의 원조요 어린이날 하루 입장료 없는 동물원인 창경원은
전국에서 몰려든 인파에 휩쓸려
부모 잃은 애들과 애 잃은 부모들이 서로 연락할 길 없이 그저 몰려다니다가
십수년 지나 KBS 이산가족찾기에서 만나고 그랬다.
참, 사람 사는게 사는게 아니던 시절.
이제는 다 가버린 소리,
그 소리들을 더듬는데 저벅저벅 오늘도 가고 있다.